트라피구라의 만행 | 얼굴 없는 중개자들, 하비에르 블라시 잭 파시

 | Contents

1. 페멕스의 코커 덤핑 물량을 덥썩 받은 트라피구라

2. 유조선에서 진행한 코커 탈황 처리

3. 대도시 인근 쓰레기 매립지에 투기한 유독성 폐기물


Dall-E가 표현한 코트디부아르의 아비장


1. 페멕스의 코커 덤핑 물량을 덥썩 받은 트라피구라

2005년말, 멕시코의 국영 석유업체 페멕스는 코커 가솔린(Coker Gasoline)을 헐값에 팔기로 합니다. 코커는 유황 및 불순물 함량이 높은 연료유인데, 페멕스는 저장공간이 없는 상황 하에 사겠다는 곳이 없어 처치해줄 누군가가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트라피구라는 여기서 돈 냄새를 맡습니다. 페멕스가 제시한 가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쌌고, 계획대로면 건당 700만 달러의 이득이 날 터였습니다. 엄청난 액수는 아니어도 수익성 높은 거래임은 분명했습니다.

코커가 팔리지 않는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코커를 사용 가능한 수준으로 정제하려면 탈황 처리가 필수라 비용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전문 탈황 시설을 거치지 않고 탈황 처리하는 것도 가능은 하지만 가성소다를 사용해야 하는 관계로 처리 시 나오는 유독성 잔류물이 치명적 단점입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서방 국가에서 가성소다 세정법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트라피구라는 가성소다 세정법을 이용하여 코커를 정제할 계획이었지만, 작업 가능한 항구가 없었습니다. 계획대로 일을 추진하지 못한다면 정유 공장에 코커를 되팔아야 하는데, 그러면 예상했던 이익은 당연히 포기해야 했습니다. 


2. 유조선에서 진행한 코커 탈황 처리

트라피구라의 최고 경영자 도팽은 직원들에게 창의성을 발휘해보라고 들들 볶았습니다. 그래서 트라피구라는 항해 중인 유조선 내에서 가성소다 세정법을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유독성 잔류물을 폐기할 곳은 이제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성소다 세정법은 유독성 잔류물도 문제지만 가성소다 자체도 부식성이 강한 관계로 이래저래 골치 아픈 공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폐선 직전의 유조선을 구해 서아프리카 해상에 정박해 작업을 진행하기로 합니다. 그들은 1989년에 건조한 182미터 선체의 프로보 코알라(Probo Koala) 호를 구합니다. 당시 선령이 17년 정도 되었을 겁니다. 페인트 칠이 여기저기 벗겨져있었고, "목적상 필요하지 않고 돈도 많이 들기 때문에" 해상보험도 가입하지 않습니다.

선상에서 가성소다 세정법을 마치고 유독성 잔류물은 일단 선내 슬롭탱크(Slop Tank)에 보관하기로 합니다. 슬롭탱크는 원래 내부 탱크를 청소하기 생긴 기름, 바닷물, 여타 화학물질을 보관하는 공간입니다. 유독성 잔류물은 부피만 해도 528세제곱미터 였습니다. 이제 폐기물을 처리할 곳을 찾아야 하는데, 암스테르담의 한 터미널이 폐기물 처리를 돕겠다고 나섰지만 비용이 너무 비싸 다른 방안을 찾기로 합니다. 나이지리아 라고스(Lagos)에서도 폐기물 처리를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3. 대도시 인근 쓰레기 매립지에 투기한 유독성 폐기물

수개월간 해답을 찾지 못해 고민하던 트라피구라는 코트디부아르의 주요 도시 아비장(Abidjan)에서 콩파니토미(Compagnie Tommy)라는 현지업체를 통해 폐기물을 털어냅니다. 폐기물을 처리한 곳은 아비장 인근 쓰레기 매립지 아코우에도(Akouedo) 였습니다. 이 곳 인근에는 판자촌이 있었습니다. 폐기물을 털어낸 다음 날, 주민들은 썩은 달걀 냄새 같은 악취에 잠에서 깨어났고 오래지 않아 주민 수천명이 이상 증세를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트라피구라는 책임을 콩파니토미에게 떠넘깁니다. 

트라피구라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콩파니토미는 현지의 폐기물 처리 용역업체 면허를 취득했고,그들은 "그 폐기물은 적절하고 합법적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었음을 인정" 했노라고. 그러나 콩파니토미는 트라피구라가 작당하여 급조한 회사로 의심받았습니다. 

그 회사는 트라피구라와 계약을 맺기 일주일 전 폐기물 처리 허가를 취득했습니다. 코트디부아르 정부 조사 결과 "부정한 공모 행위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허가를 취득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게다가 암스테르담의 폐기물 처리업체는 폐기물 처리비용으로 70만 달러를 요구한 반면, 콩파니토미는 단돈 2만 달러에 계약을 했다는 점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해당 계약서도 1장 짜리 손글씨 100여글자로 끝나는 허술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트라피구라의 존립까지 위협하는 문제로 격화되었습니다.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피해자만 95,000명을 넘어섰고, 코트디부아르 정부는 이 폐기물의 처리를 위해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제야 도팽은 위기를 인식하고 아비장으로 직접 날아가는데, 해결은 커녕 미결구금 상태로 5개월 동안 투옥됩니다. 이듬해 트라피구라는 도팽을 구하기 위해 코트디부아르 정부에 약 2억 달러를 지불합니다. 오염 정화 비용과 피해자에 대한 위자료 명목이었습니다. 훗날 트라피구라는 영국에서 제기된 소송에 합의하기 위해 3,000만 파운드를 추가로 지급합니다.

선해보이는 인상의 클로르 도팽(Claude Dauphin) , 사진 : 위키피디아


원자재 중개업체가 남긴 탐욕의 역사는 이 밖에도 많지만, 이러한 행적이 쌓이면서 본격적인 규제 대상에 오르게 됩니다. 당연한 수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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