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ary
ㅁ 2010년대 초반, SoC 사업 실패와 동일본 대지진으로 위기
ㅁ 마이크로컨트롤러 세계 1위였음에도 불구, 과잉 기술, 가격 결정권 부재 등으로 적자
ㅁ 자동차향 마이크로컨트롤러 사업을 중심으로 문제점을 해결하며 지속 성장
일본 비메모리 업체 르네사스의 실패 사례
| 들어가며
지금이야 잘 나가고 있는 회사지만 2010년 초반의 르네사스는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2012년에는 심지어 망한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주요 주주 3사(히타치제작소, 미쓰비시전기, NEC)와 은행들이 힘을 합쳐 1,000억엔의 긴급대출로 파국은 피하게 되지만, 한숨 돌리고 나니 그 다음에는 미국의 사모펀드 KKR이 르네사스를 겨냥하면서 일본의 관민 연합과 매수 경쟁을 벌입니다. 결국 일본의 관민 연합이 르네사스의 최대주주에 오르게 되고, 그 이후 험난한 구조조을 거쳐 지금은 번듯한 비메모리 반도체 업체로 자리매김하고 있죠. 르네사스가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 Contents
1. 르네사스가 휘청거렸던 근본적 이유
2. 동일본 대지진과 도요차 차량 생산 차질
3. 마이크로컨트롤러 세계 1위 임에도 적자였던 이유
4. 르네사스의 성장 전략
5. 결론 : 되는 회사와 안되는 회사의 차이
1. 르네사스가 휘청거렸던 근본적 이유
2000년 전후로 일본 반도체 업체의 대다수는 DRAM 사업에서 철수한 후 SoC(System on Chip)로 방향을 돌립니다. DRAM 업체 엘피다의 설립 과정과 비슷한 스토리가 SoC 사업에서도 펼쳐지는데, 르네사스도 2003년 히타치와 미쓰비시의 SoC 부문을 통합하여 설립된 회사입니다. 통합 이전에는 르네사스의 로고가 빨간색이었는데, 2010년 NEC 일렉트로닉스가 르네사스와 통합되면서 푸른색의 로고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빨간 르네사스'와 '푸른 르네사스'를 구분하여 지칭하기도 합니다.
푸른 르네사스는 팍팍한 재무 여건 하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까지 덮치면서 2012년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위기의 원인이 오롯이 대지진 때문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2010년 푸른 르네사스 출범 후 신성장 전략 추진과 고정비 감축을 목표로 '100일 프로젝트'를 실시했으나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SoC 부문은 적자의 주원인이 되어있었습니다.
SoC가 하나의 거대한 시장에서 진행되는 사업인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실제 SoC는 니치의 집합체라고 합니다. SoC라고 하는 반도체 제품이 있는 게 아니고, 몇천 종류에 달하는 ASIC(Application Specific Integrated Circuit)를 이쪽 제품명으로 총칭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대규모 집적회로를 SoC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SoC의 니치적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채 정부 주도의 대규모 프로젝트로 산업을 육성하려고 했고, 결국 실패했습니다. SoC에 필요했던 것은 설계 능력과 마케팅인데, 일본이 집중한 것은 최첨단 프로세스 기술이었습니다. DRAM 산업의 발상으로 SoC 산업에 접근했던 것이죠. 이 지점에서는 삼성전자의 모습이 엿보입니다.
2. 동일본 대지진과 도요차 차량 생산 차질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르네사스의 나카 공장이 큰 피해를 입습니다. 르네사스는 일본 국내외에 여러개의 반도체 공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카 공장이 셧다운되자 도요타 등의 자동차업체까지 부품 공급차질로 생산에 큰 타격을 받습니다.
도요타 입장에서는 르네사스가 3차 하청 이하에 지나지 않지만, 1,2차 하청 업체가 만드는 부품에는 모두 르네사스의 ECU(Electronic Control Unit)이 들어갑니다. ECU는 자동차 부품의 상태를 제어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 입니다. 아무튼, 도요타는 1,2차 하청 업체에 대해서는 공급 라인을 분산시켜두었지만, 이들 업체 모두가 르네사스의 ECU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몰랐던 것입니다. 게다가 르네사스 내에서 바로 그 ECU를 만드는 것은 나카 공장이었죠.
도요타가 사용하는 ECU는 나카 공장의 8인치 라인 0.18㎛ 프로세스로 제조되고 있었습니다. 이 라인은 나카 공장 외에도 일본 내의 사이죠, 시가, 카와지리 공장, 그리고 싱가포르 공장에 구축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대체 생산은 할 수 없었습니다. 엔지니어들도 1~2개월이면 나카 공장의 프로세스를 이관할 수 있다고 했지만, 문제는 '라인 승인' 이었습니다. 1차 또는 2차 하청업체가 ECU 제조를 발주하면 르네사스는 수백개의 프로세스 플로우를 구축하고, 발주자가 이를 승인하는 절차를 거칩니다. 일단 라인이 승인되면 원칙적으로 장치나 프로세스 변경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만약 장치를 변경하거나 프로세스를 변경하여 불량이 나면, 그래서 자동차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라는 생각이 배경에 깔려있는 것이죠. 자동차는 안전이 최우선일 수 밖에 없고, 따라서 ECU 또한 불량이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그래서 동일본 대지진 같은 엄청난 이벤트에도 불구, 다른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은 라인 승인을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3. 마이크로컨트롤러 세계 1위 임에도 적자였던 이유
르네사스는 2010년 초반 마이크로컴퓨터 글로벌 점유율 30%로 세계 1위였으며, ECU 한정으로는 글로벌 점유율이 40%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2010년 OPM 0.61%, 2011년 적자를 기록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과잉기술로 과잉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수익성이 낮았습니다. 엘피다와 같은 사유 였습니다.
2) 호봉제로 인하여 상위 직급 인원이 지나치게 많았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사람보다 몇 마리 잡았나 세어보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3) 가격결정권이 도요타에게 있어 제품 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 없었습니다.
4) 자동차 탑승자의 안전을 이유로 불량률 제로가 요구되었습니다. 이로 인한 테스트 공정 과다로 수익성이 안좋았습니다.
4. 르네사스의 성장 전략
2010년 초반 당시 르네사스에서 돈을 버는 사업 부문은 자동차향 마이크로컨트롤러 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사업은 아날로그&전력반도체, SoC 인데 둘 다 수익성이 현저히 낮거나 적자였습니다. 매출 기준으로 비중은 38%, 31%, 31% 였습니다. 르네사스는 돈을 버는 사업부에 우선적으로 집중했고, 자동차 산업의 흐름이 전장부품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성장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자율주행, 전기차 트렌드 또한 르네사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죠. 그러면서도 나머지 사업부인 아날로그&전력반도체, SoC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3년 기준으로 보면, 르네사스는 이제 전방산업을 기준으로 사업부를 나누고 있는데, 자동차 사업부와 산업/IoT 사업부로 나뉘어집니다. 자동차 사업부의 비중이 45~47% 정도 되는 것을 보면 과거 대비 주력산업에 대한 집중도가 좀 더 높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OPM은 30% 수준으로 과거 대비 상당히 좋아졌는데, 지금은 자동차 사업부 외 전 사업부가 비슷한 수익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정도 수익성이 나온다는 것은 위에서 살펴보았던 적자 사유를 대부분 해결했다는 얘기죠.
5. 결론 : 되는 회사와 안되는 회사의 차이
엘피다와 르네사스의 사례를 보면 되는 회사와 안되는 회사의 간극이 그리 크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위기의 원인은 비슷했습니다. 병자에게 엉뚱한 처방전을 계속 들이밀었고, 돈이 안되는 방식으로 장사를 했으며, 고정비 지출에 관대했습니다. 회사에 이 3가지 문제가 동시에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당연히 망할 겁니다. 결과적으로 엘피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르네사스는 해결했습니다. 해결의 단초는 경영진이 가져와야 하고, 추진 동력 또한 경영진의 몫입니다.
삼성전자의 위기로 인해 경영의 문제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사업지원 TF의 J 부회장, K 전 DS부문장의 실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보입니다. 전자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죠. 삼성전자가 "되는 회사"로 남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 참고자료 : 일본 전자·반도체 대붕괴의 교훈 (2013, 유노가미 다카시 저, 임재덕 역, 성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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