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DRAM 업체 엘피다의 실패 사례 | 일본 전자·반도체 대붕괴의 교훈, 유노가미 다카시

Summary

ㅁ 기술 및 조직의 통합은 외형적 통합 뿐 아니라 조직문화와 프로세스 통합 필요

ㅁ 기술의 융합은 좋은 것만 뽑아 합치는 방식 말고 전체 프로세스 관점에서 최적화 필요

ㅁ 과잉기술은 기업 경쟁력 약화 요인. 수익성 중심의 기술 개발과 생산 전략 수립 필요



일본 DRAM 업체 엘피다의 실패 사례


| 들어가며

한 때 일본의 DRAM은 세계 제일의 점유율을 자랑했습니다. 1971년 인텔이 1kb DRAM을 발명한 후 1970년대 DRAM 시장은 미국의 시대였습니다. 그 후 일본의 히타치, 도시바, NEC, 후지쯔, 미쓰비시 등 대기업 가전업체들이 DRAM 시장에 진출, 1980년대 중순에는 미국을 제치고 전세계 시장의 약 80%를 차지합니다. 이 때 당시의 DRAM은 PC용보다는 산업용 컴퓨터에 주로 사용되는 고사양 제품이었습니다. 내구성 등의 척도에서 25년 품질 보증이 요구되는 등 공정에 있어 품이 많이 들어가는 구조였죠. 일본은 이런 제품들을 양산하는데 성공하여 시장 대부분을 차지한 것입니다.

그 후 일본 반도체 업계에는 기술의 극한을 추구하는 문화가 업계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PC가 컴퓨터 시장의 대세를 차지하면서 DRAM 수요도 구조적인 변화를 맞이합니다. PC용 DRAM에는 25년 품질 보증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이 구입할 수 있는 가격대의 제품을 만들려면 적정 수준의 품질을 가진 DRAM을 저렴한 생산원가로 많이 만드는 게 중요했죠. 한국과 미국은 이러한 구조적 변화에 부응한 저가 DRAM 대량 양산 전략으로 일본을 앞질러나갑니다. 

그 당시 일본도 이러한 변화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미 주고객층이 대형 컴퓨터 업계였던 관계로 기업문화 개선, 프로세스 조정 등의 대응을 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일본이 DRAM에서 철수하기 직전, 64mb DRAM을 만들 때 필요한 공정수는 한국, 대만의 1.5배, 미국의 2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경쟁에서 밀린 일본 반도체 업체 대부분은 DRAM 사업을 정리하고, 1999년말 NEC와 히타치의 DRAM 부문은 합작사 엘피다를 만들어 사업을 합치기로 합니다. 안타깝게도 엘피다 출범 후 2년간 시장 점유율은 17%에서 4%까지 급감합니다. 양사의 장점만 합쳐서 시너지를 내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역시너지가 되버린 셈입니다. 엘피다의 사례를 통하여 그 원인을 알아보겠습니다.


| Contents

1. 엘피다의 계획 : 인사, 업무공간의 통합

2. 설계의 문제

3. 개발의 문제

4. 양산의 문제

5. 과잉기술의 문제

6. 의의 : 중요한 것은 이익 증대를 위한 기술

7. 마치며 : 삼성전자는 안녕하신지요?


Dall-E가 표현한 반도체 공장의 풍경


1. 엘피다의 계획 : 인사, 업무공간의 통합

엘피다의 모든 부서는 히타치, NEC의 사원이 각각 절반씩 구성비를 차지했습니다. 과장, 부장, 본부장, 사장까지 모든 직위는 이중으로 구성되어서 예를 들어 과장이 히타치, 부과장이 NEC 라면 부장은 NEC, 부부장은 히타치가 되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설계, 개발, 양산 거점도 뒤섞이게 되었습니다. 엘피다의 설계, 개발 거점은 NEC 부지 내에 설립되었고, 여기에 양사의 엔지니어들이 전출되어 왔습니다. 엘피다의 계획은 이랬습니다. 

 1) NEC 부지 내에 설립한 설계 센터에서 DRAM을 설계한 후 동일 부지 내 개발센터에서 프로토타입과 공정 플로우를 완성한다.

 2) 양산은 히타치, NEC 각각의 양산 공장 및 새로 설립한 엘피다 양산 공장에서 진행한다.


2. 설계의 문제

이미 큰 적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 준비 기간을 가질 여유는 없었습니다. 통합 이후 설계센터에서는 우선 일이 급하니까 NEC 버전의 DRAM, 히타치 버전의 DRAM 2종류를 각각 설계했습니다. 서로 설계할 때 사용하던 기술이 달랐으니 바로 업무를 진행하려면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양쪽 설계자는 자신의 성과를 확보하기 위해 각자 설계한 DRAM의 프로토타입을 먼저 만들어달라며 개발 부문을 압박했습니다. 일손이 모자라긴 마찬가지였던 개발 부문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게 되었고, 히타치, NEC 사람들이 각각 절반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어느 버전의 설계를 선택할지를 두고 혼란이 발생했습니다.


3. 개발의 문제

양사의 좋은 부분만 합쳐서 더 좋은 프로세스를 만드는 게 개발 부문의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서로 출신이 다르고 서로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상황이라 마찰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좋은 부분만 떼내어 합친다는 발상 자체도 문제였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A사보다 B사의 세정 기술이 뛰어나다고 가정하겠습니다. A사의 프로토타입 라인에 B사의 세정 기술을 도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공정 과정에서 발생한 찌꺼기를 제거하는 프로세스는 플라즈마에 의한 에싱과 습식 세정의 조합으로 실현됩니다. A사의 철학은 강력한 에싱으로 찌꺼기를 최소화하는 프로세스를 목표로 합니다. 그래서 습식 세정 상에서 찌꺼기 제거 능력이 약하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여기에 B사의 세정 기술을 도입하면 반도체에 큰 스트레스를 주게 되어 수율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습니다.

 2) 수율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치고 B사의 세정 기술을 도입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 경우에도 문제는 생깁니다. B사의 세정액은 A사의 세정 장치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술에 최적화된 특정 세정액을 사용하도록 설비가 갖추어져있어 B사의 세정액을 사용하면 A사의 배관 계통에 부식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예 장치가 가동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정 장비를 새로 도입한다면 시간과 비용이 동시에 소모됩니다.

프로세스는 업체 내에서 오랜 기간 숙성되어온 문화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특정 부분만 옮겨 붙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반도체 장비 세정 작업 , 사진 : 코미코 사업소개 영상 캡처본


4. 양산의 문제

앞서 살펴본 문제로 인하여 엘피다가 개발하는 DRAM 공정 플로우는 결국 NEC의 인프라를 사용하고, NEC의 프로세스로 개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 양산은 어떻게 될까요? 당초 엘피다는 히타치 싱가포르 공장, NEC 히로시마 공장, 엘피다의 신설 공장에서 DRAM을 양산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개발 단계까지 존재하는 제약으로 인하여 양산은 NEC 히로시마 공장에서만 가능했습니다. 히타치 공장은 프로세스 문제로 사용할 수 없었고, 엘피다의 신설 공장은 자금 문제로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히타치 싱가포르 공장을 어떻게든 사용해보려면 다른 장비를 사용해도 같은 생산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Copy Essentially 라는 최적화를 거쳐야 합니다. NEC 공장과 히타치 공장은 60% 가량 공정의 차이가 있어 이 힘든 과정을 수행해야할 범위도 넓었습니다. 이게 너무 힘들어서 NEC의 프로세스를 히타치 개발 센터에서 히타치의 양산 장비 사양에 맞게 다시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공정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세정 공정은 Copy Essentially를 수행하는 게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5. 과잉기술의 문제

2002년 신임 사장으로 사카모토 유키오가 취임하면서 기술 융합 이외의 조직, 오퍼레이션 등의 문제는 일단락됩니다. 그러나 혼란이 사그러들면서 이제야 과거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뿐이었고, 미래 신기술에 대한 대비는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엘피다의 공정은 과잉 품질의 DRAM 제품을 양산하고 있었는데, 타사 대비 필요장비는 2배 이상 많았고 테스트 공정은 10배 가량 더 많았다고 합니다. 원가경쟁력이 생길 수가 없는 구조였던거죠.

그러던 중 2007년에 DRAM 가격 급락하고 2008년부터 1gb DRAM 스팟 가격이 1달러 아래로 떨어집니다. 당장 1Q07부터 마이크론, 유럽의 키몬다, 대만의 난야, 파워칩, 프로모스가 적자에 빠집니다. 3Q07부터는 엘피다도 적자에 빠집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이 때도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2011년 이후 DRAM 가격은 0.5달러 전후까지 떨어졌습니다. 엘피다는 2012년 2월 파산 상태에 이릅니다.


6. 의의 : 중요한 것은 이익 증대를 위한 기술

2005년 이 책의 저자 유노가미 다카시는 엘피다에서 삼성으로 이직한 X이사와 인터뷰를 합니다. 당시 엘피다의 수율은 98%, 삼성의 수율은 83% 였습니다. 그런데 엘피다는 망하고 삼성은 최강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X이사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1) 당시 최첨단이었던 512mb DRAM의 칩 면적은 삼성이 70평방 밀리미터, 엘피다가 91평방 밀리미터였다. 따라서 300mm 웨이퍼에서 취득할 수 있는 칩의 수는 수율 83% 삼성이 약 830개, 수율 98%의 엘피다는 약 700개가 되어 수율이 나쁜 삼성이 더 많은 DRAM을 취득할 수 있었다.

 2) 수율 60%에서 80%로 올리는 것보다 80%에서 98%로 올리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삼성은 수율 80% 이상만 나와도 충분히 채산성이 있기 때문에 수율을 올리기 위해 불필요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3) 삼성은 양상 중인 DRAM 이외에 한층 더 작은 DRAM의 출시를 같이 준비했다. 현행 양산품의 수율을 높이는데 비용을 쓰는 대신 좀 더 작은 칩사이즈의 DRAM 양산 시작을 우선시했다.

 4) 삼성이 쓰고 있는 장비의 쓰루풋(웨이퍼 처리 효율)은 엘피다의 약 2배였다. 즉, 1매의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형성하는 시간이 엘피다의 절반이었다. 같은 매수의 웨이퍼를 처리하는 경우 엘피다는 삼성의 2배에 달하는 장비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고, 생산원가가 삼성의 2배라는 의미이다. DRAM은 칩 원가의 절반 이상이 장비이기 때문에 설령 엘피다의 칩 취득 수가 삼성보다 많다고 하더라도 수익성 면에서 삼성을 이길 수는 없다.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DRAM 1개당 원가를 내리는 방향으로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엘피다는 2011년 5월 당시 세계 최초로 25nm 미세화 공정을 개발했고, 가장 적은 공정수로 생산하는 프로세스를 확립했습니다. 그러나 상기와 같은 이유로 망했습니다. 전체 프로세스의 관점에서 봤을 때 더 싸게 생산할 수 있도록 일을 해야지 "세계 최초"와 같은 타이틀에 집착하려고 하면 그 결과가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Dall-E가 표현한 수율 100% 반도체 웨이퍼의 이미지


7. 마치며 : 삼성전자는 안녕하신지요?

HBM 패권은 SK하이닉스에게 넘어갔고 파운드리는 TSMC에게 완패했습니다. DDR4는 중국의 CXMT가 맹추격하고 있고 NAND는 업황 부진이 길어지는데다 경쟁이 심합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식도 혼란스러운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과거 '기술의 삼성'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며 선단공정 개발에 매진하곤 했던 게 삼성전자였는데, HBM은 수요 부족을 사유로 거의 접다시피 했습니다. 문제의 진앙지를 보면 삼성전자의 경우 엘피다의 위기 발생 영역과는 정반대되는 지점에서 위기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돈 버는 기술에 집중하는 문화가 HBM을 놓치게 만들었고, 파운드리 수율을 잡는 지난한 과정을 기다리지 못하게 만든 게 아닐까요?

TSMC보다 더 미세한 공정을 할 수 있다고 홍보했으나 막상 수율이 안나오니 고객들이 떠나갔습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수율의 문제를 미세화로 돌파하는 게 어려워졌습니다. 삼성식 해결책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고, 여기에 조직의 여러가지 문제점이 맞물리면서 일이 제대로 안풀리게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캐쉬카우 역할을 하던 메모리까지 균열이 생기니 이제 선택과 집중을 해야하는 상황에 내몰렸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파운드리 투자를 멈춰서 다행입니다.

메모리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원래의 지위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급한 불을 끈 다음 삼성전자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메모리 만으로는 시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파운드리 시장 진입을 다시 시도해야할 것입니다. 다만 수년 내에 TSMC를 이기는 건 불가능해보이는군요. 

그동안 1등이라는 구호에만 집착해왔던 건 아닐까요? 사내정치를 위한 구호보다는 조용히, 끈기있게 쌓아올리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해보입니다. 오랫동안 경험을 쌓고 돈을 벌 수 있는 특정 영역의 제품군부터 차근차근 공략해나가면 파운드리 사업에도 기회가 올 겁니다. 아웃복서는 인파이터만큼 화끈한 플레이를 보여줄 순 없습니다. 그러나 차근차근 점수를 쌓아서 인파이터를 이길 수 있습니다.



* 참고자료 : 일본 전자·반도체 대붕괴의 교훈 (2013, 유노가미 다카시 저, 임재덕 역, 성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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