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알루미늄 산업
| Contents
1. 주인 없는 원자재 꿀통 러시아
2. 혼란기의 촌극
3. 땡처리 시장이 된 러시아에서 알루미늄 사업을 전개한 트랜스월드
4. 피로 물든 알루미늄
5. 트랜스월드의 퇴장과 루살의 등장
6. 탐욕을 채우기엔 러시아도 좁다
러시아 알루미늄 회사 Rusal의 제련소 풍경, 출처 : Financial Times
1. 주인 없는 원자재 꿀통 러시아
소련 체제가 무너진 후 자본주의 신생국 러시아는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있었습니다.
러시아는 원유, 금속, 곡물 등 자원이 풍부한 국가지만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는 자본주의 국가들과 교역이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초까지도 외부 세계와의 무역은 엄격히 통제되어왔는데, 소련이 무너지면서 알루니늄, 구리, 석유, 석탄 등이 세계로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왔습니다. 러시아의 수출 기반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시절 원자재 수출은 사실상 원자재 중개업체들이 정부의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그들은 러시아의 천연자원을 수요자와 연결시켜주면서 러시아에 외화를 안겨주었습니다.
소련이 무너지기 이전부터 원자재 중개업체는 소련과 거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1954년 석유 트레이더 바이서가 그랬고, 1960~70년대에는 카길과 같은 곡물 중개업체들이 소련을 자주 찾았습니다. 필리프브라더스도 1973년 모스크바 지사를 열었습니다. 그 당시 소련은 소수의 국가기관이 대외교역을 마음대로 결정했습니다. 금속은 라즈노임포르트(Raznoimport, 이름과는 달리 수출도 관리했음), 곡물은 엑스포르트흘레브(수입도 관리했음), 석유는 소유즈네프테엑스포르트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원자재 중개업체는 이들 기관의 관료들과 돈독한 관계를 쌓아 무역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말 소련의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실시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 글라스노스트(개방) 프로그램이 민간 기업에 서서히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1987년 소련은 사업가 기질이 있는 젊은이에게 '협동조합' 이라는 소기업을 운영할 권리를 부여했는데, 훗날 이들 중 여러명이 러시아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로 성장합니다. 당시 협동조합은 컴퓨터 수입, 복권 운영 등 행정부가 해소해주지 못한 일들을 수행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잉여물자를 염가 매수하고, 할당된 예산을 소진시켜야 하는 관료들에게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큰 돈을 벌어들입니다. 가끔 이들은 원자재를 확보하거나 원자재 수출 방법을 찾곤 했는데, 이 지점에서 소련 기업가와 원자재 중개업체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2. 혼란기의 촌극
소련 기업가 아르템 타라소프(Artem Tarasove)는 스스로를 '소련 최초의 합법적 백만장자'라 일컬었습니다. 그는 소련 경제의 비효율성을 이용해 부를 축적했는데, 언젠가 연료유를 사들일 때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현 우크라이나 지역에 정유 공장이 있었는데, 마침 겨울이 따뜻한 편이라 발전소의 연료유 수요가 감소하여 공장에는 재고가 많이 쌓였습니다. 정부에서 재고 처리 지침을 제시하지 않자 공장 책임자는 인근 숲에 구덩이를 파고 연료유를 폐기하라 지시합니다. 다른 정유 공장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죠. 타라소프는 이렇게 폐기될 연료유를 차곡차곡 모아둔 다음 판매처를 찾습니다.
때마침 마크리치앤드코가 소련 행정부의 통제권 밖에 있는 소련산 석유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타라소프를 런던에 데려와 최고급 호텔인 피커딜리 메리디앙호텔의 스위트룸에 모시고 템스강 유람선을 통째로 임대한 후 선상에 오케스트라까지 불러 그를 '설득' 합니다. '마음이 여리고 섬세한 소련 사람'인 타라소프는 이러한 접대에 깊은 감명을 받아 마크리치앤드코와의 거래를 확정짓습니다.
아르템 타라소프, 출처 : bizpro.htgetrid.com
펩시콜라로 유명한 회사 펩시코(PepsiCo)는 소련과의 거래로 잠시나마 세계 수위의 해군력을 갖추기도 했습니다. 콜라 대금으로 소련이 현금 대신 잠수함 17척, 순양함, 호위함, 구축함을 각 1척씩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들 군함은 모두 고철로 팔려 해체되었습니다. 당시 펩시코 회장이었던 도널드 켄들(Donald Kendall)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련을 무장해제시키는 것은 미국 정부보다 우리가 더 잘할 겁니다."
이 밖에도 마크리치앤드코는 라즈노임포르트 관료들과 돈독한 관계를 쌓아 소련의 금속 무역을 쓸어담고 있었는데, 소련 국가보안위원회의 조사로 인해 입지가 줄어들게 됩니다. 여러 중개업체들이 이 자리를 파고 드는데, 필리프브라더스는 소련의 니켈 수출 물량 전부를 담당하는 것으로 라즈노임포르트와 계약을 체결합니다. 소련의 니켈 생산량은 전세계의 25% 규모 입니다.
3. 땡처리 시장이 된 러시아에서 알루미늄 사업을 전개한 트랜스월드
소련 체제 붕괴 이후 소련의 공업 기업들은 생산/공급 계획 부재, 원재료/노동자 수급 체계 붕괴, 운영비 고갈 등 총체적 난국에 빠집니다. 제 역할을 해야할 정부가 없어졌으니 자국의 장사꾼이나 원자재 중개업체와 거래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제가 급속도로 나빠진다는 것은 국내 수요가 폭락한다는 것이고, 이는 원자재 수출 물량이 더욱 많아진다는 의미였습니다. 소련의 원자재는 그야말로 '땡처리' 중이었는데, 원유, 알루미늄, 크로늄 등의 자원을 최저 시세의 1/4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원자재 중개업체 입장에서는 횡재였죠. 그러나 대다수 러시아 국민에게는 혹독한 고난의 시기 였습니다. 막대한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중이었고, 신생 러시아는 물가 급등 & 통화가치 급락 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렸습니다.
이 시기에 거래를 성사시키려면 임기응변은 필수였습니다. 예컨대 중개업체 중에는 담배와 조니워커 위스키를 싣고 가 연료유를 매입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각자도생하는 시베리아 도시에서는 담배와 위스키가 최고의 화폐였습니다. 그곳의 광산과 제련소에서는 소련 시절 관리자들이 아침 회의를 하면서 보드카 한 잔 하는 것은 일상이었습니다. 여러 잔을 들이키는 것도 흔한 광경이었습니다.
트랜스월드(Trans-World)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알루미늄 트레이더 데이비드 루번(David Reuben)은 우즈베키스탄 출신 레프 체르노이(Lev Chernoy)와 함께 이러한 혼란기를 기회로 삼습니다. 세계에서 알루미늄이 가장 싼 곳은 러시아였고, 여기서 신뢰할만한 공급자를 찾아 물량을 확보한다면 큰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트랜스월드는 1970년대부터 라즈노임포르트에 주석을 수출하고 알루미늄을 받는 식으로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체르노이와 함께 하게 된 1992년에는 기존 거래 체계가 무너져있었습니다. 데이비드는 이 때가 기회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리지만, 그에게 구소련의 산업 조직화 방식은 걸림돌이었습니다.
소련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알루미늄 생산국이었지만 생산시설이 영토 여기저기에 흩어져있었죠. 알루미나 제련소 위치가 동부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극서부 지역 등에 흩어져있는 반면 알루미나에서 알루미늄을 뽑아내는 제련소는 시베리아 동쪽에 있었습니다. 시베리아 제련소는 가장 가까운 항구와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내륙이었고, 소련 붕괴 이후 새로 형성된 국경 문제까지 겹쳐 알루미나 공급이 중단됩니다.
이 무렵 체르노이는 카자흐스탄 북부의 어느 알루미나 공장에 납품 중이었는데, 그 공장도 다른 구소련 기업들처럼 돈이 바닥난 상태였습니다. 체르노이는 대금 대신에 알루미나를 받아 시베리아 크바스노야르스크의 제련소에 납품했습니다. 그 제련소도 돈이 없어 체르노이는 대금 대신 알루미늄을 받았습니다. 1992년 5월, 체르노이는 데이비드를 찾아와 자기 수중에 알루미늄이 잔뜩 주어지게 된 사정을 얘기합니다. 데이비드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체르노이와 함께 크라스노야르스크로 향합니다.
크라스노야르스크는 인구 100만명 도시로 주요 산업 중심지 중 하나인데, 사실상 알루미늄 제련소가 도시를 먹여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련소가 돈이 없어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지불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데이비드는 알루미늄을 확인한 후 그 자리에서 대금을 선불로 지급하기로 합의합니다. 데이비드에게는 동생이 있었는데, 데이비드가 런던으로 돌아온 후 동생을 꼬드겨 제련소 투자 자금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자기 재산 대부분 + 차입금까지 동원하죠.
(좌) 사이먼 루번, (우) 데이비드 루번, 출처 : the Irish Sun
데이비드는 제련소에 알루미나를 공급하고 대금은 알루미늄으로 받는 임가공 거래를 즐겨 이용하게 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방식은 러시아 알루미늄 시장 전반으로 확산됩니다. 데이비드는 러시아산 알루미늄을 전세계에 파는 일을, 체르노이는 제련소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을 분담합니다. 그들의 호흡은 환상적이었고, 곧 트랜스월드는 러시아 알루미늄 산업의 선두 주자가 됩니다. 그들은 임가공에 만족하지 않고 러시아 3대 알루미늄 제련소의 지분까지 매입합니다. 뿐만 아니라 호주에서 알루미나를 수입하기 위해 러시아 극동 항구 1곳을 포함해 새로운 기반 시설도 건설합니다.
이 시기 마크리치앤드코는 내분에 휩싸여 소련 사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트랜스월드 입장에서는 강력한 라이벌이 알아서 게임에서 빠져준 셈이죠.
소련이 아닌,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는 것은 커다란 위험이 수반되었습니다. 사유재산권에 대한 규칙이 명문화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트랜스월드 같은 업체에 러시아 천연자원 사업 지분권이 허용될 지 여부도 불투명했습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위험을 감수하여 러시아 알루미늄 산업에 진입했습니다.
혼란기를 거쳐 알루미늄 산업에 질서 비슷한 무언가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그것은 정부 주도의 계획위원회가 아니라 데이비드 같은 트레이더 였습니다. 그는 알루미늄 기반 시설을 정비하고 공장 운영에 드는 자본을 댔으며, 증설 자금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설령 폭리를 취했다 해도 그들이 러시아 알루미늄 산업의 토대를 유지한 것은 사실입니다.
4. 피로 물든 알루미늄
1994년 러시아의 혼란기가 진정된 후 트랜스월드는 알루미늄 제련소 모두에 대한 소유권과 기존 거래 관계를 인정 받습니다. 이로써 트랜스월드는 공식적으로 미국 알코아에 이어 알루미늄 시장 세계 2위 업체로 자리매김 합니다. 동사는 러시아 알루미늄 생산량의 절반 가까이, 세계 기준으로는 5~10%를 점유했습니다.
트랜스월드는 지중해 연안 모나코의 몬테카를로부터 남태평양 사모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역에 설립된 수백개의 기업으로 구성되는데, 공개된 재무 정보는 한 건도 없었습니다. 전직 직원들의 추정에 따르면 대략 연간 수억달러 규모의 이익을 냈고, 1990년 전반에 걸쳐 약 30억 달러를 벌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 알루미늄 중개 마진을 보면, 서방은 톤당 5달러 수준이었던 반면 러시아에서는 톤당 최소 200달러 이상이었습니다. 알루미늄 제련소에서는 공장을 돌리려면 알루미나가 필요했으니 임가공 계약 협상을 할 때는 원자재 중개업체가 마진을 마음대로 책정할 수 있었던 것이죠.
러시아의 알루미늄은 세계시장을 덮쳐 1990~1994년 250만톤 이상의 물량이 런던금속거래소에 밀려들어왔고, 이 영향으로 1988년 톤당 4,000달러를 찍었던 알루미늄 가격은 1,000달러로 급락했습니다. 런던금속거래소의 계약 인수도를 처리하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은 알루미늄이 너무 많이 들어와 거래소 외부에 다른 공간을 찾아야할 정도였습니다.
러시아 알루미늄 사업은 수익성은 좋았지만 위험했습니다. 돈 냄새를 맡고 찾아든 범죄자들도 많았거든요. 트랜스월드를 포함한 중개업체들은 올리가르히, 폭력배 등과 이권 다툼을 벌이게 됩니다. 유명한 올리가르히 로만 아브라모비치(Roman Abramovich)는 "금속 중개 산업에서는 사흘에 1명 꼴로 죽어나갔다" 며 당시의 살벌한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중개업체 에이아이오시, 글렌코어 등은 살인사건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되어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5. 트랜스월드의 퇴장과 루살의 등장
1990년대말, 트랜스월드는 카자흐스탄에서의 세금 문제로 파트너와 갈등이 생겨 자산이 압류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러시아 내에서도 보리스 옐친 말기 & 푸틴 부상 시기라서 푸틴의 측근들이 위협 세력이 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알루미늄 산업에서는 올레크 데리파스카(Oleg Deripaska)가 중심 인물로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감지한 루번 형제는 회사를 정리하여 러시아에서 퇴장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은 카자흐스탄에서 소송 합의금으로 2~2.5억 달러를 받고, 알루미늄 자산 일체를 아브라모비치에게 매각하면서 5.75억 달러를 받습니다.
루번 형제는 구소련에서의 모험으로 벌어들인 돈을 런던 부동산에 투자하여 부동산 재벌이 됩니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2020년 기준 루번 형제 '각자의' 자산을 68억 달러로 추정했습니다. 루번 형제는 보수당 주요 기부자로 총리와 가깝게 교류했고, 옥스퍼드대학교에 8,000만 파운드를 기부하여 신설 대학의 이름을 루번칼리지로 명명하게 됩니다.
올레크 데리파스카, 출처 : the Guardian |
한편, 글렌코어는 루번 형제와는 정반대로 러시아 알루미늄 산업에 더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글렌코어는 데리파스카와 긴밀한 동맹이 됩니다. 사야노고르스크 알루미늄 제련소 지분을 확보하면서 알루미늄 사업을 시작한 데리파스카는 러시아 알루미늄 산업의 다른 부문에서 지분을 확대해나갑니다. 2000년에 이르러 그는 러시아 알루미늄 자산 상당 부분을 루살(Rusal)이라는 회사에 통합합니다. 그의 제련소는 알루미나와 운영자금이 필요했고, 글렌코어는 이를 도와줍니다. 당시 글렌코어의 CEO 글라센버그는 데리파스카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여 그와 친분을 쌓아나갔습니다.
2007년에 이르러 글렌코어와 데리파스카는 각자의 알루미늄 자산을 일단의 러시아 투자자와 합병하는 거래를 체결하여 루살은 러시아 알루미늄 시장에 대한 실질적 독점권을 획득합니다. 글렌코어는 루살의 알루미늄을 전세계에 판매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6. 탐욕을 채우기엔 러시아도 좁다
트랜스월드는 여러 개의 회사가 느슨하게 연결된 형태의 복합기업이었습니다. 러시아의 주니어 엘리트를 양성하는 학교 역할을 하기도 했죠. 여기서 미래의 올리가르히가 나온 셈인데, 체르노이는 2004년 한 인터뷰에서 "러시아 재계 엘리트 중 거의 절반이 내 제자" 라고 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역할이라면 글렌코어도 한 몫 했습니다. 여러 올리가르히의 자금줄이 되어줬습니다.
초기 올리가르히에게 원자재 중개업체는 사업의 멘토이자 조력자였습니다. 중개업체들은 상품을 수출하는 방법을 보여줬고 훗날 러시아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자본을 미리 형성하도록 도와줬습니다. 올리가르히와 서방 금융계를 잇는 가교 역할도 했습니다. 조세피난처와 역외회사를 이용하는 편법도 알려줬죠.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정/재계의 특징을 요약하면 '권력의 사유화'였습니다. 원자재 중개업체는 러시아의 새로운 권력자들과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었습니다. 중개업체가 활개 친 곳은 러시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구소련의 영향력이 사라진 모든 곳이 그들의 잔치판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중남미로부터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소련의 비호를 받으며 생존해온 수십 개 위성국과의 경제적 지형을 다시 그리게 됩니다.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