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용인술 | 디즈니만이 하는 것, 밥 아이거

현명한 용인술


| Contents

1. 명암이 뚜렷했던 상사 룬 얼리지

2. 과거의 상사를 부하로 두고 동기부여 하는 방법

3. 결론 : 현명한 용인술에 필요한 경험


(좌) 룬 얼리지, (우) 밥 아이거,  출처 : IT뉴스 아웃스탠딩

1. 명암이 뚜렷했던 상사 룬 얼리지


ABC스포츠가 잘 나가던 시절, 그 중심에는 룬 얼리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1960년대초부터 ABC스포츠를 운영했고, 방송 역사상 누구보다도 많이 사람들이 TV로 스포츠를 경험하는 방식을 바꾼 인물입니다. 그는 스포츠 프로그램이란 단순히 운동경기를 방송하는 게 아니라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운동선수는 내러티브의 등장인물로 놓고 훌륭한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재능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유능했지만 자기 주변에 자신만큼 유능한 사람들을 두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훌륭한 리포터와 해설위원을 영입합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일과 일을 수행하는 방식을 혁신하기 위해 기술 진보를 받아들이는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리버스 앵글 카메라, 슬로우모션, 위성 생중계 등은 룬 얼리지가 방송에 도입한 기술이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도구와 기술을 시험하고 시청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는 밥 아이거에게 "혁신 아니면 죽음이다. 새로운 것이나 검증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면 혁신은 없다." 는 금언을 남깁니다.

룬 얼리지는 완벽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방송국 부조정실에 종종 들르거나 전화를 걸곤 했습니다. 어디서든 방송을 보다가 문제가 있는 부분을 포착하면 지적했습니다. 그에게 사소해서 무시해도 좋은 세부사항은 없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완벽은 모든 사소한 것들을 바로 잡아서 얻어내는 결과였습니다. 그는 방송 직전이라도 문제가 있는 부분이 보이면 프로그램 전체를 뒤엎고 재작업을 지시했습니다. 편집실에서 모든 스태프가 밤을 새야한다 해도, 그게 아닌 다른 어떤 희생을 치르게 된다 해도 그는 개의치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쇼' 였고, 그것은 쇼를 만든 사람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작품을 위대하게 만들고자 하는 헌신은 그의 활력소 였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지치거나 불만스러워했지만, 한편으로 그의 헌신적인 태도는 모두에게 활력을 주었습니다. 그 활력은 불만을 잠재우기에 충분했습니다. 그가 완벽을 기하는데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알고 나면, 그저 그의 기대에 부응해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밥 아이거는 그로부터 리더십의 특질 중 하나인 '완벽에 대한 집요한 추구'를 배웠다고 합니다. 이것은 규칙이라기 보다 사고방식이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달성해야 하는 완벽주의가 아니라 '평범함을 거부하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차원에서의 완벽주의 였습니다.

룬 얼리지는 일을 진행함에 있어 그 어떤 변명도 용납하지 않았고, 일이 불만족스럽게 되었을 경우 매섭고 다소 잔인한 방식으로 추궁했습니다. 그가 팀 회의 석상에서 잘못을 강하게 추궁할 때 밥 아이거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적이 있었는데, 룬은 그에게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이후에는 오히려 그를 약간 더 존중하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가 얻은 통찰은 다음과 같습니다.

직장생활에서든 개인의 삶에서든, 정직하게 실수를 인정하면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더욱 존중하고 신뢰하게 된다. 살면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실수를 인정하고, 실수에서 배우고, 때로는 실수를 해도 괜찮다는 본보기가 되는 것은 가능하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거짓말하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는 행태다.

사실 룬은 변덕스러운 상사 였고, 상사의 변덕은 직원의 사기에 큰 타격을 줍니다. 그런 상사는 특정 직원이 부서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가 갑자기 비난을 퍼부으며 기를 죽일 수 있습니다. 룬은 또한 직원들이 서로 경쟁하고 논쟁을 벌이도록 유도하곤 했는데, 직원들이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되는 효과는 있었지만 직원간의 일상적인 불안감을 유발시키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그의 실력은 탁월했지만 꼭 이런 식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일을 추진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죠. 적시에 적절한 피드백을 주지 않는 상사는 조직에 불필요한 중압감과 비효율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밥 아이거는 훗날 이 시절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토록 많은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탁월함과 공정함은 서로 배타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2. 과거의 상사를 부하로 두고 동기부여 하는 방법


톰 머피와 댄 버크가 이끄는 캐피탈시티즈가 ABC를 인수한 이후 룬 얼리지와 그들과의 관계는 껄끄러웠습니다. 톰과 댄은 룬을 존경했으나 다소 낯설어했고, 룬은 그들과 거리를 두며 때때로 대놓고 비판을 했습니다. 종종 회의에 늦었고 '회계통에 불과한' 그들의 경영 방침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룬은 위대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아껴서는 안되다고 믿었으며, 자신이 일하는 방식을 예산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말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그는 수익성을 신경쓰지 않았고, 경영진의 압박을 받으면 넉넉한 제작비로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광고주들이 더 많이 몰린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머피와 버크는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호하게 비용을 통제했고 이를 ABC 구성원 전체에게 적용했습니다.

밥 아이거는 이런 흐름에 적응하여 자기 임무를 적절히 수행했고, 기회를 얻었을 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고속 승진 궤도에 오릅니다.

1998년말, 밥 아이거가 디즈니에게 인수된 ABC 그룹의 회장직을 맡게 된 이후, 그는 다가오는 밀레니엄에 대비한 특집 보도를 구상하게 됩니다. 회사의 고위중역을 모아놓고 진행한 회의 석상에서 룬 얼리지는 그의 아이디어를 탐탁치 않아합니다. 문제는 룬 얼리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 그것도 과거 자기 부하였던 녀석이 그런 지시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과거 머피와 버크가 ABC 방송사 사장 자리를 밥 아이거에게 안겨준 1993년부터 밥 아이거는 룬의 상사 였습니다. 이후 밥과 룬의 사이는 괜찮았고 업무 수행에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밥이 경영본부에 들어가 룬이 자기 뜻대로 일할 수 있도록 회사의 간섭을 막아주는 협력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밥 또한 굳이 그의 생각을 바로 잡아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룬은 자아가 최소로 위협받을 때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밥의 지시를 룬이 실행에 옮기도록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부하의 의구심과 염려를 풀어주며 일을 해야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내가 보스이고 내 지시가 이행되길 원한다는 점을 명확히 전달할 필요도 있는 법이죠. 전자와 후자는 상황에 따라 달리 선택되어야 하는 항목입니다. 협상의 여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밀레니엄 특집 보도에 대해 밥 아이거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후자의 방식을 사용했고, 그 대신 룬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계획은 실행에 옮겨질 것임을 알립니다. 밥은 과거 룬의 스타일을 겪어보았기에 이를 고려하여 이렇게 동기부여 했습니다.

"룬, 사람들이 당신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바로 이걸 거예요. 규모가 크고 대담하니까 말이에요. 실행이 불가능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그런 가능성 때문에 시작도 하지 않는 그럼 사람은 아니지 않나요?"

밥은 룬의 자긍심을 부추겨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했고, 그의 시도는 먹혀듭니다. 룬은 열정적으로 프로젝트를 지휘하여 자신의 실력을 멋지게 발휘합니다. 당시 룬은 일흔에 가까운 나이였고, 그 방송은 그의 생애 마지막 대형 프로젝트 였습니다.


3. 결론 : 현명한 용인술에 필요한 경험


높은 창의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 주장이 뚜렷한 경우가 많습니다. 평범한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으니 놓친 부분을 챙기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요. 그러나 창의성에 기반한 우월감이 그들의 자아를 왜곡시킬 때도 있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이 감정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이성에 기반한 것인지 판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가 일을 주도하지 못해 심통이 난 것인지, 아니면 진짜 일에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 것인지 가려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밥 아이거는 과거 자신이 겪어본 상사의 특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참여를 적절히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용인술을 현명하게 구사한 셈입니다.

회사생활 중에 적절한 용인술이 필요했던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리더가 용인술에 실패한 것을 부하의 잘못으로 곡해하는 경우도 있었고, 직원간 감정의 문제를 모른 척 넘어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감정의 문제에 포커싱해서 생각해보면, 감정이란 건 문제가 발생한 그 즉시 모두들 알아차렸던 것 같습니다. 불편한 상황이라도 그 문제를 풀고 가냐, 아니면 모르는 척 슬그머니 넘어가느냐의 차이였죠. 

감정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풀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치로 감정을 녹여버리는 방법, 그 사람의 열정을 끄집어내어 감정의 문제가 사소한 것이 되도록 덮어버리는 방법 등 간접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여기서 정답에 근접한 선택지를 고르는 것에는, 역시 경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