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방송업계를 주름 잡았던 2인조 | 현금의 재발견, 윌리엄 손다이크

미국 방송업계를 주름 잡았던 2인조


| 들어가며

미디어 기업 캐피털 시티즈를 이끌었던 톰 머피와 댄 버크는 워런 버핏이 인정한 최고의 경영진이었습니다. 버핏은 그들이 경영 분야 최고의 2인조 라는 찬사를 보낸 바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윌리엄 손다이크의 저작 '현금의 재발견' 첫번째 챕터에 그들이 등장합니다. 이번에 디즈니 CEO 밥 아이거의 저작 '디즈니만이 하는 것'을 읽다보니 그들의 이야기가 나와 흥미로웠는데, 알고 보니 그는 머피와 버크의 눈에 들어 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를 잘 살려서 CEO 자리까지 고속 승진한 케이스 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머피와 버크의 캐피털 시티즈 경영 이야기를 정리해봅니다.


(좌) 톰 머피, (우) 댄 버크,  출처 : 뉴욕타임즈



| Contents

1. 톰 머피 & 댄 버크 : 2인조 경영 체계를 구축하다

2. ABC를 인수하고 디즈니에 회사를 매각하다

3. 캐피털시티즈의 경영 비결

4. 톰 머피의 자본배분

5. 결론 : 경영과 투자의 공통점과 차이점


ABC 인수 후 캐피털 시티즈 로고,  출처 : fair.org

1. 2인조 경영 체계를 구축하다


1966년, 톰 머피가 캐피털 시티즈의 사장이 되었을 당시 미국 최대 미디어 기업은 CBS 였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 후 톰 머피는 디즈니에 캐피털 시티즈를 CBS보다 3배 비싼 가격에 매각했습니다. 동사가 30여년에 걸쳐 보여준 놀라운 성장은 동종 업종 내에서 긴 호흡의 인수 합병을 거듭한 결과 였습니다.

톰 머피는 1925년생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으로 복부한 후 코넬대학교를 거쳐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소비재 기업 레버 브라더스에서 일하다가 1954년 어느 파티에서 만나게 된 프랭크 스미스로부터 올버니에 있는 WTEN 이라는 TV 방송사를 운영해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톰 머피는 그의 부탁을 받아들여 해당 방송사의 사업성을 개선하고 비용을 절감하여 돈을 벌 수 있는 회사로 탈바꿈 시킵니다. 1957년부터 약 2년에 걸쳐 스미스와 머피는 2개의 방송국을 추가 인수한 후 '캐피털 시티즈' 라는 사명을 쓰기 시작합니다.

1961년 톰 머피는 하버드 MBA 출신 댄 버크(당시 30세)를 채용하여 회사의 내부경영을 맡깁니다. 이후 1966년 스미스가 사망할 때까지 머피는 스미스와 함께 라디오, TV 방송국들을 인수하며 성장을 이어갑니다. 스미스 사후 40세였던 머피는 CEO 자리에 오르고, 댄 버크는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가 됩니다. 버크는 회사경영을, 머피는 기업인수와 자본배분을 담당했습니다.




2. ABC를 인수하고 디즈니에 회사를 매각하다


미국에는 한 개 회사가 소유할 수 있는 방송사 개수를 제한하는 규정이 있었는데, 캐피탈 시티즈는 1970년에 이미 그 제한치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1984년 규제가 완화되어 머피는 1986년 ABC와 계열 방송사들을 약 35억 달러에 인수합니다. 그는 이 때 워런 버핏의 자금 지원을 받습니다. ABC는 캐피털 시티즈보다 덩치가 큰 회사였기 때문에 이 인수건은 "피라미가 고래를 삼켰다"는 제목의 기사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머피는 30% 수준의 ABC 이익률을 캐피털 시티즈 수준인 50%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버크와 머피는 ABC에 캐피털 시티즈의 경영기법을 도입하여 비용 절감부터 시작했습니다.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 식당 등 불필요한 혜택을 없애고 인력 구조조정, 불필요한 부동산 처분 등을 계속합니다. 그 당시 ABC를 포함한 방송 업계에는 임원들이 점심을 먹으러갈 때도 리무진을 태워주는 혜택이 있었는데, 당연히 이것도 없애버립니다. ABC 임직원 입장에서는 못마땅한 처사였겠지요. 그래서 약간의 잡음도 발생합니다.

ABC 직원들의 시각으로는 머피와 버크가 "3류" 경영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방송계 출신이 아니었고 전국구 네트워크 경험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할리우드와 친하지 않았고 극단적인 구두쇠 전략을 쓰고 있었죠. 특히 ABC 임원들은 그들의 "촌스러운 조직운영"과 그들이 추구하는 소박한 가치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머피와 버크는 ABC 임직원들의 불만을 알고 있었으나, ABC의 악화된 수익성을 회복시키기 위해 비용통제를 관철하고, 방송업계에 부는 변화의 방향에 맞는 인사조치를 단행합니다. 

밥 아이거는 당시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ABC스포츠 부사장 자리에 있었는데, 이러한 흐름 속에 기회를 얻어 능력을 발휘, 급속 승진궤도에 오릅니다. 그는 머피와 버크의 경영 방식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머피와 버크 또한 다른 직원과 달리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는 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밥 아이거는 1993년, 43세의 나이에 ABC 사장이 되었고, 1994년 댄 버크가 은퇴하면서 캐피털시티즈 및 ABC의 사장 겸 COO 자리에 앉습니다.

1995년, ABC의 모든 주요 사업 부문의 매출액, 현금흐름이 크게 개선되고, 계열 방송국도 주요시간대 시청률 순위 1위에 오르며, 경쟁사인 CBS, NBC 보다 더 높은 수익성을 갖추게 됩니다. 캐피털 시티즈는 ABC 인수 이후 다른 대규모 인수를 시도하지 않습니다. 

같은 해 여름 워런 버핏은 머피와 당시 디즈니의 CEO 마이클 아이스너가 디즈니의 캐피털 시티즈 인수를 논의할 수 있도록 만남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이 때 머피는 캐피털 시티즈 순이익의 28배에 달하는 금액인 190억 달러에 인수 협상을 마칩니다.

만약 1966년 캐피털 시티즈에 1달러를 투자했다면, 29년이 지난 1995년에는 204달러가 됐을 것입니다. 연평균 수익률 19.9%로 동 기간 S&P500의 10.1%를 앞지르는 성과지요.




3. 캐피털시티즈의 경영 비결


머피와 버크는 조직을 수평적으로 만들고 직원 규모를 타이트하게 운용했습니다. 조직 분권화를 경영철학의 중심으로 삼았으며 본사조직은 최소 수준으로 운영했습니다. 마케팅, 전략기획, 인사 등 각 기능 부문에 부사장은 없었으며 출판사, 방송국 부서장들에게는 모든 권한이 있었습니다. 사업목표만 달성하면 본사에서 간섭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가능한 한 최고의 인재를 뽑아 그들을 내버려두라" 는 게 캐피털 시티즈의 인사 철학이었던 셈이죠. 이직률 또한 낮았습니다. 댄 버크는 프랭크 스미스 생전에 "이런 시스템에서 가능한 자율과 권한에 길들여지면 퇴사할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강력한 비용 통제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머피와 버크는 방송국의 매출액은 통제할 수 없지만 비용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습니다. 그들은 아주 미미한 의사결정을 할 때도 예상치 못한 장기 비용이 생길 수 있으니 계속 지켜봐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장기 성장을 염두에 둔 사업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지요. 지역 뉴스 TV 방송 시장에서는 1위 방송사가 광고매출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가져간다는 점을 인지하여 뉴스 분야 인재와 기술력에 넉넉히 투자했습니다.



4. 톰 머피의 자본배분


머피의 자본배분 방식은 기업인수 또는 자사주 매입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기업을 인수할 때 그는 다각화를 지양하고 배당 최소화 & 신주 미발행 & 부채 적극 사용 정책을 적용했습니다. 자본유출을 막아 여유자금을 축적하고, 자금조달 시에도 자본 대비 조달비용이 낮은 부채(차입금)을 사용했습니다. 특정 회사를 인수하고 나면 일단 관련 부채를 다 상환할 때까지 다른 회사를 인수하지 않았습니다. 부채 사용에 따른 리스크관리를 하면서 속도 조절을 현명하게 한 것입니다. 부채는 사업체 매입 시에만 사용했고, 자사주매입 시에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머피는 매력적인 인수 대상을 찾으면서 오랜 시간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는 사고 싶은 회사를 찾아내면, 그 회사를 보유한 사람과 인연이 닿도록 몇 년씩 공을 들였습니다. 적대적 인수는 시도하지 않았고, 보통 머피가 그 회사의 책임자와 직접 연락하여 거래상대방을 알아냈습니다. 피인수기업이 선호하는 인수자가 되려고 최선을 다 했으며, 인수 여부를 평가할 때는 "인수 후 10년 동안 차입금 없이 두 자리 세후 수익이 나올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기준에 맞다면 가격을 무리하게 깎으려하지 않았고, 매도자에게 매도가격을 물어본 후 가격이 공정하다고 판단되면 받아들였습니다. 만일 상대가 제시한 가격이 비싸다고 판단되면, 머피는 자기가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가격을 다시 내밀었고, 상대가 그 가격을 거절하면 협상 테이블에서 바로 일어났습니다. 그는 이렇게 단도직입적인 방식을 통하여 시간을 절약하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사주 매입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던 장기 약세장 시절에 적극 시행했습니다. 당시 회사의 주가는 현금흐름 대비 한 자릿수 배수의 가격이었고, PER도 물론 한 자릿수 였습니다. 그는 여기에 18억 달러를 투입했으며, 장기간에 걸쳐 전체 유통주식수의 50% 가까운 물량을 자사주로 사들이죠. 자사주 매입은 19년 동안 연평균 22.4%의 수익을 주주들에게 안겨주었습니다.




5. 결론 : 경영과 투자의 공통점과 차이점


이상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경영과 투자의 비결에는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용을 절감하여 만든 유휴자금을 유망한 사업에 투자하는 경영 방식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투자 원칙과 비슷합니다. 경영은 조직과 인사 문제를 추가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투자와 차이점이 있지만, 머피와 버크는 역할을 분담함으로써 이 문제에 현명하게 대처합니다. 그래서 톰 머피는 사실상 워런 버핏처럼 일할 수 있었고, 기업을 인수하거나 자사주를 매입할 때 현명한 투자자의 사고방식을 적용했습니다. 머피와 버핏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지점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그들의 2인조 체계는 회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권한 위임의 문제를 상기시킵니다. 적극적으로 권한을 위임하되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회사의 일반적인 지향점이죠. 이게 말이 쉽지 실천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쉽지 않습니다. 

머피와 버크는 최고의 인재를 뽑으라는 지침을 남겼지만, 현실 여건을 감안할 때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은 최고의 인재가 아니라 직무에 적합한 인재입니다. 자리에 맞는 사람을 찾아 적정 수준의 권한을 주는 것은 투자와는 성격이 다른 문제입니다. 머피는 이런 일을 처리하는 능력은 버크가 자기보다 낫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인정하여 경영을 맡깁니다. 나 자신의 한계와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는 점에서 그는 현명한 경영자이기도 했습니다.

최고의 2인조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참고

  - 현금의 재발견, 윌리엄 손다이크

  - 디즈니만이 하는 것, 밥 아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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