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성장 기관으로서의 코스트코; 노마드 투자자 서한 | 닉 슬립, 콰이스 자카리아

"노마드 투자자 서한" 은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펀드매니저가 투자자를 대상으로 작성한 서한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펀드 성과와 자산운용사의 관행을 논하는 부분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을 제외하면 멋진 투자 서적이죠. 물론, 펀드 성과 측정법과 자산운용사에 관심이 있다면 모든 게 좋을 것입니다.

인상 깊은 부분이 많다보니 여러 차례 나눠서 정리를 할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짐바브웨 주식 투자였지만, 신기할 뿐 바람직한 투자는 아니기 때문에 실용성 관점에서 순서대로 정리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접근했을 때 가장 먼저 정리할 것은 코스트코 이야기 입니다.



'04년 연간 서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 규모의 효율성 공유 모델

코스트코는 회원제 소비재 도매업체로 상품매입가의 최대 14% 고정 마진(마크업)을 붙인 판매가를 책정하며, 마진율을 상향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러한 판매 정책을 고수합니다. 낮은 GPM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

 1. 낮은 운영비. 코스트코는 비용을 bp(basis point = 0.01%) 단위로 관리합니다.

 2. 경쟁력 있는 도매가. SKU(Stock Keeping Unit)을 4천개로 고정하여 매장 내 공간을 경매로 채우는데, 경매의 기준은 높은 임대료가 아니라 고객에게 제시하는 가치 입니다. 공급자는 고객에게 최저가로 공급하지 않으면 쫓겨납니다.

 3. 아주 큰 매출. 규모의 효율로 얻은 편익을 고객에게 되돌려줘 미래 매출 성장을 도모합니다. 이렇게 하여 기존 매장은 더 낮은 가격으로 고객에게 물건을 판매하여 궁극적으로는 매출 성장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비용 절감으로 얻은 이익을 공유 받은 고객이 보답하는 구조가 성립하여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해집니다.

이를 규모의 효율성 공유(Scale Efficiencies Shared) 모델이라고 합니다. 이익을 고객에게 더 많이 돌려줌으로써 장기적인 성공 확률을 높이는 모델로, 코스트코가 가진 경제적 해자의 근원입니다.


| 코스트코의 문제 = 프랜차이즈 지속을 위한 이익의 유보

매출은 P(판매가격)*Q(수량)로 성립되지요. 보통 P가 내려가면 Q가 증가하면서 매출이 증가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C(비용)를 제하고 나면 막상 이익은 얼마 남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전략은 고객만 이득을 본다는 관점도 있고, 그래서 주식 시장은 판매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는 회사를 선호합니다.

코스트코의 사례는 이러한 관점의 반대편에 위치합니다. 책에서는 '04년 당시 코스트코를 바라보는 부당한 편견을 지적합니다.

 1. 낮은 이익률. 그러나 이는 회사의 장기 성장을 위한 전략일 뿐입니다.

 2. 비싼 밸류에이션(당시 PER 24배). 코스트코는 판매가를 인상할 수 있는 룸이 매우 크고, 그렇게 할 경우 순이익이 순식간에 증가할 수 있으므로 밸류에이션이 비싸다고 할 수 없습니다. 회사는 프랜차이즈, 즉 독점적 사업권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당장의 이익을 미루고 있는 것 뿐입니다.


 3. 비용 문제. 창고 및 물류 시스템 구축, 직원 복리후생 및 의료보험 등으로 발생한 것입니다. CEO 시네걸에 따르면, 기업에 존재하는 직원, 고객, 주주 3가지 기반 중 코스트코는 직원, 고객 기반이 매우 강하다고 합니다. 이는 행복한 직원과 회사의 정책에 기인한 것이며, 향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매장 수로 인하여 영업레버리지 효과도 생길 것입니다. 코스트코는 비용 문제가 있지만, 지금 지출하는 비용은 "좋은 비용"이고, 문제는 해결되고 있습니다.


| 성장률을 감안하면 비싼 게 아니다!

책에서는 코스트코의 매출과 FCF는 보수적으로 연 13%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4%는 신규 매장이 성숙하면서 자산회전율이 증가하는데서, 4%는 성숙 매장의 매출 증가에서, 남은 5%는 신규 매장 수 증가에 따른 성장 입니다. 고객은 이러한 성장의 편익을 꾸준히 나눠받는데, 이를 '영구 성장 기관'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코스트코의 밸류에이션은 당시에도 절대적 수치로는 저렴하지 않았지만, 저자는 향후 예상되는 성장률을 감안하면 싸다고 생각해 투자했습니다.

저자의 계산으로 펀드의 매수단가 39달러는 코스트코의 연간 성장률을 5~6%로 가정했을 때의 주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코스트코의 성장률을 보수적으로 잡아도 연 13% 라고 계산했죠.
5년 후 시장이 코스트코의 성장률이 연 13% 라는 것을 주가에 모두 반영한다고 했을 때, 펀드의 매수단가 39달러 기준으로 5년간 약 27%의 주가상승률이 필요합니다. 다음의 도표를 참고하시죠.



| 국내 사례 : 쿠팡과 이마트

생각해보면 이 모델은 B2C 사업구조를 가진 회사에게는 모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국내업체 중에 쿠팡과 이마트를 예로 들어보죠.

쿠팡은 로켓배송을 앞세워 이커머스 시장 진입에 성공했습니다. 빠른 배송을 위해 물류센터와 배송체계에 엄청난 투자를 했고, 고객의 호응을 얻자 멤버십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회원 수가 늘어나면서 확보한 고객층을 대상으로 여러가지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쿠팡은 "가격"과 "속도" 로 프랜차이즈를 구축했고, 이를 바탕으로 멤버십, OTT 서비스, 배달 등 여러가지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마트는 이런 저런 전략들을 모방했으나 프랜차이즈 구축에는 실패했습니다. 고객에게 뚜렷하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이 없으니 해자가 생길 수가 없죠.

이런 와중에 소위 '알테쉬' 라 불리우는 중국의 이커머스 플랫폼의 강력한 공격이 들어왔습니다. 이에 대한 쿠팡과 이마트의 대응은 서로 상반되는 방향이라 흥미롭습니다. 쿠팡은 멤버십 월 회비를 50% 이상 인상했습니다. 이마트는 연간 회비를 3만원에서 4,900원으로 낮췄습니다. 그런데 상시로 낮춘 건 아니고 5월 한 달 동안만 이벤트성으로 낮췄군요.

전략의 결과가 어떻게 될 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만, 쿠팡의 경우 아마도 사람들은 욕하면서 계속 멤버십을 이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은 서비스 퀄리티 대비 메리트가 있거든요.

그러나 이마트는 상황이 더욱 어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 달 짜리 이벤트 가지고 없던 프랜차이즈가 만들어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쿠팡의 미래가 밝다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는 그렇다 쳐도 해외에서 알테쉬를 이길 수 있을까요? 인구가 줄어드는 한국 내에서만 유통업을 한다면 성장이 금방 끝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쿠팡은 충분한 해자를 갖추기 전에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났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코스트코도 미국에서 알테쉬를 만났습니다. 코스트코의 강력한 오프라인 해자에 타격을 입힐 수 있을까요? 일정 부분 그럴 수 있겠지만, 코스트코의 실적은 아직 견고해보입니다.


| 시사점

기업이 프랜차이즈를 통한 해자를 구축하려면 비용 지출은 불가피 합니다. 비용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분간해내고, 해자의 지속성을 판단한 후 각 성장 시나리오의 성장률을 가늠해보아야 합니다.그 다음 시나리오별 밸류에이션을 계산해보면 현재 주가가 어느 정도의 연간 상승률을 보이며 상승 궤적을 그려나갈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머릿 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면 절대적인 밸류에이션이 비싸다 해도 적정한 투자 대상이라는 의미죠.

해자의 지속성에 대한 판단이 서는 회사들은 이미 아득한 수준의 밸류에이션을 보이고 있는 걸 보니 저의 통찰력이 훌륭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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